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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로또 아닌가요?"

조은무지개 2007. 4. 9. 10:39

 "이거, 로또 아닌가요?"

<현장> 인천 '송도 광풍', "정부가 저 난리 만들었다"

5일 오후 2시, 한 40대 중년 여인이 허겁지겁 돈다발을 들고 농협 문을 들어섰다.

“청약하러 왔어요. 아직 시간 안됐죠? 뭐부터 하면 돼요?”

“손님, 여기는 지역농협입니다. 청약은 중앙회 지점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네? 농협이면 농협이지, 지역은 뭐고 중앙회는 또 뭐에요? 중앙회는 어딨는데요?”

최근 사흘간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2동에 위치한 부평농협에서 볼 수 있었던 흔한 풍광이다.

송도 오피스텔, 전매 차익 노린 신들린 행렬

코오롱건설
이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내에 분양하는 ‘더프라우’ 오피스텔에 부동산업자, 투기꾼, 서민 할 것 없이 단기차익을 노린 수십만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것도 고작 1백23채(16~71평형)밖에 물량이 없는데도 경쟁률은 5천대 1에 육박했다.

오피스텔의 경우 일반 아파트와 달리 분양권 전매가 허용되는 데다가, 주변 시세보다 3백만원 가까이 싼 평당 평균 6백50만원에 공급되고 거주지역, 청약통장 가입여부에 상관없이 만20세 이상 성인 남녀라면 청약신청이 가능하며 한 사람이 3건까지 청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동산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뚫어놓은 '구멍'이 화근이었던 셈.

인천 부평구 삼산동에 사는 이 모(주부. 43)씨는 “주위에서 송도 오피스텔인가 뭔가 분양한다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오늘 아침 뉴스에서 오늘이 마감이라고 난리가 났다는 얘기를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고 말했다. 농협계좌도 없는 이 씨는 청약예치금 5백만원(1군 10~20평형대 5백만원, 2군 30평형대 1천만원, 3군 40~70평형 1천5백만원)만 챙겨 은행으로 달려온 것.

부평농협 관계자가 이 씨에게 “여기는 지역농협이라서 일단 여기서 계좌를 개설하시고 집에 돌아가셔서 인터넷뱅킹으로 신청하라”고 하자, 이 씨는 “인터넷뱅킹 쓸 줄 모른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고객도 “뭐 이렇게 절차가 복잡하냐”고 역정을 냈다. 농협 관계자는 탈진한 목소리로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다”며 “청약 절차나 방법도 모른 채 무작정 달려오는 고객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곳 부평농협에만 이날 하루에만 7백여명의 고객들이 계좌개설 및 인터넷뱅킹 신청을 하고 갔다. 8개 창구가 있던 부평농협은 이미 7개 창구는 청약관련 창구로 전락했고, 나머지 1개 창구만 일반 입출금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농협을 나서는 이 모(인천 삼산동. 50)씨는 “공과금 내려고 어제 들렀는데 대기순번이 90번도 넘어서 그냥 포기하고 돌아섰다”며 “이건 해도 해도 좀 심한 것 아니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가족들 '총동원령'도

사람들은 1인당 평형별(3개군)로 1채씩 청약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 명의를 총동원해 청약 전쟁에 돌입하고 있었다. 4인 가족의 경우, 가족 전부가 성인이면 총 12채를 청약신청 할 수가 있는 셈.

농협 앞에서는 친정어머니까지 동반하고 나온 30대로 보이는 주부가 휴대전화를 통해 “여기서는 안된데. 어떡해, 빨리 움직여”라는 다급한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고 있었고, 또 다른 40대 남성 역시 휴대전화를 통해 “야, 몇 개(청약신청) 했어? 일단 넣어놔”라는 지시(?)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대신 청약하러 왔다는 박 모(21. 대학생)씨는 “아침부터 하도 엄마한테 시달려서 접수하려 왔는데 인터넷뱅킹으로 될 것을 왜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한 뒤, “오늘 내 통장에 천 만원이나 들어와 있던데 그걸로 인터넷 뱅킹하러 가야한다”고 발길을 돌렸다.

"로또 아닌가요?"

비슷한 시각, 인천 부평1동 부평역 인근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부평지점은 말 그대로 북새통이었다. 이 곳은 청약신청을 직접 받는 중앙회 소속. 때문에 2층 접수창구에서 부터 늘어선 줄이 농협 앞 길거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부평구 부개동에서 왔다는 한 여성(주부. 53)은 “12시부터 줄 섰는데 이제 3시네”라며 앞으로도 족히 1시간은 넘게 기다려야 하는 늘어선 줄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어제까지는 할까 말까 망설이다 오늘이 마감이라 꼭 해야겠다는 생각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당첨되면 실제로 분양 받을거냐’는 질문에 “지금 여기에 거기(오피스텔) 살려고 줄 선 사람 있냐”고 반문했다.

기자와 대화를 곁에서 듣고 있던 또 다른 40대 여성 역시 “다들 한 몫 챙기려고 왔죠 뭐. 로또 아닌가요?”라며 “되면 좋고, 아니더라도 예치금을 다시 돌려받는데 신청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우리 안상수 시장님이 지난번에 새로 지은 삼산월드체육관에서 특강을 하셨는데 앞으로 송도, 영종도 할 것 없이 아파트와 편의시설이 무진장 들어선다고, 인천이 엄청나게 개발될 거라고 하대요”라며 “그 말을 들으니 그냥 분양 차익 말고 한번 본격적으로 투자해 볼까 하는 믿음도 생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농협 정문에 줄서고 있던 한 중년 여성도 “이게 투기라고 하면 투기고, 재테크라고 하면 재테크인데, 일단 한번도 이런 걸 해보지 않아서 나도 이참에 좀 배운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솔직히 우리 같은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 같은 걸 해보기라도 했겠냐”며 “정말 돈 많은 투기꾼들은 여기서 이런 식으로 힘들게 줄 서지 않을 거 아니냐.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최모(남. 45)씨는 “집집마다 ‘프라우인지 프라다’인지 그 얘기를 하는 통에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며 “분양에 당첨되도 그 다음에 이걸 가지고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부평지점을 지나던 한 여성이 “오늘 농협이 왜 이래. 농협이 미쳤다”며 장사진에 놀라움을 표시하자, 동행하던 또 다른 여성은 “송도 오피스텔 난리났데자나”라고 답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부평역 인근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오피스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부평 농협지점 관계자는 송도 광풍에 대해 “말도 마라, 지금 2층에서 직원 4명(보조 4명 별도)이서 사흘간 하루 1천명 꼴로 고객들을 상대하고 있다”며 “오늘은 점심도 10분 밖에 못 먹고 아직도 저러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는 “하루 상대하는 고객만 1천명이지 실제 1인당 신청하는 건수는 그보다 수 배는 된다”며 “1인당 가족 명의 다 끌어와서 10채씩 신청하고 가는 사람도 약과다. 우리쪽에서는 10채 이상 신청하면 세무조사 대상이 된다고 설명을 해 주어도 막무가내로 땡강을 부리는 통에 할 수 없이 처리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심지어 한 부동산업자는 이 명의 저 명의 다 끌어와서 80채나 신청한 적도 있다”며 “너무 심하다 싶어 우리 은행에서는 절대 못 받는다고 겨우 돌려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나도 모르게 우리 마누라도 인터넷뱅킹으로 청약 신청을 했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다른 농협 관계자는 “부평역 근처 대단지 아파트 중심으로 부녀회 차원의 입소문이 돌면서 부평 일대 지점들에 유독 방문 접수가 많다”며 “또 프라우 오피스텔이 들어설 송도 지점 역시 방문 고객이 특히 많다”고 전했다.

"정부가 저 난리 만들었지, 누가 만들었겠냐"

부평지점 근처 B부동산 중개업자는 “정부가 저 난리를 만들었지, 누가 만들었겠냐. 저 사람들은 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길가는 사람 다 붙잡고 물어봐라. 오피스텔 분양권 전매 허용한 정부가 이렇게 만든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겠냐”고 덧붙였다. 그는 “나도 농협 근처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다는 죄로 하루에도 수십통은 송도 오피스텔 분양 문의 전화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윽고 은행 마감시간인 4시 30분이 다가오자 농협 직원들은 서둘러 벽면 여기저기에 “4시30분부터 밖에 나가시면 이유불문! 출입 불가능합니다. 항의 불가!! 4시 30분 이후 절대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에 농협 정문 바깥에까지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황급히 은행 안으로 들어서려고 북새통을 이뤘고, 이에 농협관계자들은 “질서를 지키라”며 마이크를 붙잡고 “대기번호표를 받으라”고 목청을 높였다.

농협측은 재차 방송을 통해 “적금, 수익적금 통장은 안됩니다. 4시 30분 이후는 절대 은행 밖에 나갔다 오실 수 없습니다. 본인 신청이 아니면 대리인 인감통장과 인감증명서를 반드시 지참해야하고, 통장이 없는 분들은 가족들 보고 빨리 가져오라고 하세요”라고 안내했다.

그 순간 돈다발을 들고 황급히 은행 문을 달려온 여성은 은행직원에게 “어떡하면 되냐. 돈 갖고 왔다”며 자신이 들고 있던 돈다발을 내밀었다. 은행 관계자는 말문이 막힌 듯 진땀만 흘렸다.

한 농협 관계자는 “돈없이 그냥 달려오시는 노인분들도 계시다”며 “다짜고짜 오셔서는 ‘△△은행 통장에 돈 있으니 일단 신청 해 달라’고 떼를 쓰시는 바람에 우리도 당황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인천 부평 경찰은 최근 사흘간, 만일의 사태에 대비 경찰 6명을 매일 투입해 농협 앞을 지키게 했다. 현장에 나와 있던 한 경찰은 “솔직히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 곳을 지키고 있는 바람에 다른 치안 업무에 차질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씁쓸해했다.

부평지점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상대로 부동산 업자들은 부평역 인근 또 다른 오피스텔 물건을 소개하는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업자들은 ‘더 프라우’ 오프스텔 보다 평당 2백은 더 저렴한 평당 4백만원대에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업자들은 “언론에서 떠드는 바람에 송도 프라우가 뜬 것일 뿐 우리가 훨씬 더 싸다”며 “내일 ‘△△경제’ 신문에 우리 물건이 본격적으로 광고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2, 제3의 광풍을 예고하는 풍광이었다.

농협 앞 노점상 할머니, “마음 비웠어. 쓰레기나 버리지 말기를...”

이 날 부평지점 앞에서 땅콩, 마른 바나나 등을 팔고 있던 한 노점상 할머니는 이 곳 투기 광풍에 “다들 잘 살라고 그러는데, ‘나쁘다, 좋다’ 나는 그런 건 몰라요”라며 “그냥 그런가보다, 그냥 마음을 비웠지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래도 여기서 기다리면서 담배꽁초나 먹고 난 음료수 같은 것 좀 안 버렸으면 좋겠어요. 가뜩이나 이 사람들 때문에 장사도 못하고 있는데 내가 쓰레기 치우는 사람은 아니잖아요”라며 한숨을 내셨다. 깊게 패인 주름이 더 깊어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