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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의 사람들

조은무지개 2006. 11. 29. 12:46
 

                                  목동의  사람들

                                                                                    

■집값 급등에 ‘속앓이족’■

“창피해서 남편이 의사라고 말도 못해요.” 남편이 치과의사라는 P씨(67년생)는 요즘 속앓이가 보통이 아니다. 남편은 의사고, 목동 5단지 45평형 아파트에 사니 꽤 자산가일 것이라는 세간 인식과 달리 자기 소유 집 한 칸 마련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비관스러워서라는 부연설명이 따라왔다.

강서구 등촌동에 살던 P씨는 2001년 목동에 들어왔다. 당시 38평형을 5억원에 살까말까 고민하다 전세를 얻기로 결정했다. 2000년 경제 거품과 함께 집값이 단기적으로 너무 오른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살면서 집값이 내려가면 그 때 사거나, 아니면 2년간 전세로 살면서 단지 분위기를 살펴본 후 제일 좋은 단지와 동을 선택해사기로 했다. 그리고 2년 후. 집값은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1억원이 더 오른 6억원을 호가했다. 5억원일 때도 비싸다고 안 샀는데, 6억원에는 더욱 사지지 않아 전세를 연장했다. 집주인이 갑작스레 집을 내놓는 바람에 전세 물건을 찾아 헤매다 겨우 하나 찾은 45평형을 전세로 얻었다. 다시 전세 만기가 돌아온 지난해 말, 급등한 아파트 가격에 속은 쓰리지만 그래도 안 되겠다 싶어 10억원까지 오른 45평형을 무리해서라도 사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고. 그런데 남편도, 부동산중개업소도 “최근에 너무 심하게 올랐으니 잠시 관망해보자”라고 했고 P씨 역시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결정을 늦췄다. 그러는 사이 45평형은 15억원대를 훌쩍 넘겨버렸다.

결국 최근 4억원가량에 전세 재계약을 했다는 P씨는 “이제 45평형을 구입하겠다는생각은 버렸다”고 했다. 대신 10억원 선에서 35평형을 사는 것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그러나 이도 쉽지 않다. 전세계약금 4억원에 보유 현금 2억원을 합친다 해도 무려 4억원을 대출받아야 한다.

■단지내외 차별(?)에 괴로워하는 ‘소외족’■

목동 아파트 단지로 대변되는 목동은 다소 신기한 동네다. 단지 내 아파트와 단지 밖 아파트 차별(?)이 보통이 아니다. 그 뿐인가. 단지 내 사람들도 다 똑같지는 않다. 샐러리맨이 주로 모여 살아 빈부격차가 덜하고 ‘균질화’돼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에서 보면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목동에서 10년 넘게 살았다는 A씨는 이를 두고 “도토리 키재기 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서로서로에 대해 자꾸 구분을 지으려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목동 아파트 14단지 C블록에 사는 J씨는 이 같은 차별에 괴로워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14단지는 A블록, B블록, C블록으로 구성돼있다. A블록은 38, 45, 55평형의 중대형평형 위주다. B블록은 20, 27, 30, 38평형으로 A블록보다는 약간 작은 평형이다. C블록에는 20평형과 27평형이 밀집해있다. B블록에도 20, 27평형이 있지만 C블록에 속한 같은 평형 아파트와는 위상이 다르다.

예전에 임대아파트였다는 C블록은 아예 초등학교 배정부터 다르다.


같은 14단지면서도 갈산초등학교에 못가고 신목초등학교를 다녀야 하는 C블록 사람들의 불만과 소외감은 하늘을 찌른다. 신목초 아이들과 갈산초 아이들은 목일중학교에서 모두 만난다.

같은 중학교 친구가 된 아이들은 서로 어울려도 신목초 학부형과 갈산초 학부형은 같이 화합하지 못한다는 게 J씨 설명이었다. 심지어 “더 많은 사교육을 시켰으니 실력도 더 나을 거라며 은근슬쩍 과시하는 갈산초 엄마들 한 번 두고 보자”고 벼르는 신목초 엄마들이 많다고도 했다.

갈산초뿐 아니라 목동 단지 내 7개 초등학교가 사정은 다 비슷하다(목동 아파트 단지에서는 두 단지가 한 초등학교를 공유한다).

P씨는 또 “언젠가 같은 갈산초 출신이라도 단지 애들은 단지 내 중학교인 목일중에, 래미안 애들은 봉영중에 갈라져 배정된 적이 있다. 그 때 단지 내 엄마들이 이제야 비로소 래미안 애들과 헤어질 수 있게 됐다며 모두들 환호성을 지른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목동 교육 인프라만 활용하는 ‘실속파’■

목4동 단독주택에 사는 L씨(61년생)는 2000년에 목동 사람이 됐다. 목동 주택에 살던 남편 친구가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집을 내놨단 소식에 남편이 덜컥 그 집을 사버려서다. 신내동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것에 만족했던 L씨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목동행을 강행해야 했다.

처음엔 적응이 쉽지 않았다. 이전까진 목동이란 동네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L씨는 이후 목동에 대해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과연 목동에서 내가 살 수 있을까’란 생각을 많이 했었다고 기억했다.

“다들 첫마디가 목동은 잘 사는 사람도 많고, 많이 배운 사람도 많고, 무엇보다 교육열이 무척 높아 쉽게 따라가지 못할 거란 거였어요. 밖에서 잘 하던 아이가 갑자기 떨어진 등수에 적응하기도 힘들 거라고. 이전 학교에서 전교 2~3등 하던 아이가 충격을 받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저는 저대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이사와서 2년간 너무 힘들어 남편 원망을 무던히도 했다는 L씨는 어느날 마음을 다잡았다


L씨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목동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 학원수업과 과외는 거의 시키지 않았지만 엄마들과의 정보 교류에는 열심히 동참했다. L씨는 목동 분위기가 아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고 단언했다.

“처음엔 갑자기 떨어진 등수에 너무 큰 충격을 받더라고요. 그런데 그 다음부터 마음을 다잡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하더니 다시 예전 등수를 되찾았어요. 그리고는 이번 2006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사회과학부에 합격했습니다.”

“목동도 목동 나름이에요. 단지 아파트만 비싸지, 꼭 단지 아파트만 고집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싼 금액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많아요. 어차피 목적이 부동산값 상승에 따른 자본 이익이 아니라 애들 교육이잖아요. 싼 아파트나 주택, 혹은 전세로 들어와 목적만 달성한 후 나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L씨는 중학생, 초등학생인 둘째와 셋째 교육이 끝나면 미련 없이 목동을 뜰 생각이다. 2억원에 산 집이 지금 3억원도 채 안 되지만, 욕심을 조금 버리니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목동 떠나볼까 ‘고민족’■

93년 당시 목동에 살던 친정 오빠를 따라 목동으로 이사왔다는 C씨(61년생)는 “좀더 빨리 목동을 떠났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을 늘 마음 한 구석에 갖고 있다. C씨는 처음 8단지 27평형으로 들어왔다가 2년 전에 9단지 38평형으로 이사했다. 당시 집값은 4억원대. 남편 반대가 심했지만 밀어붙였다. 지금 그 집이 12억원을 넘어간다. 반대했던 남편은 ‘부인이 복덩이’라며 SM525도 한 대 사줬단다.

반면 공무원이던 친정 오빠는 평수를 넓혀가겠다며 일산 화정 51평짜리 아파트를 2억원에 구입해 나갔다. 그 아파트가 지금 5억원 정도 된다. 같이 시작했지만 순간의 선택이 C씨와 C씨 오빠 자산 규모를 크게 바꿨다. C씨 오빠처럼 일산신도시가 막 세워질 때 목동 집을 팔고 일산으로 갔다가 지금 땅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C씨는 목동에 산 덕분에 돈은 벌었지만 행복하지는 않다고 했다. “교육열 강한 동네에서 아이가 그만큼 따라주지 않으면 그것만큼 속상한 일도 없다”는 게 요지다.

“너무 잘하는 아이들이 많다보니 웬만큼 잘해서는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수행평가 1~2점 낮게 나오면 등수가 쑥 밀리지요. 자기 아이 챙기기도 바쁠텐데, 남의 아이들에 대해 어찌나 그리 잘들 아는지 조금만 성적이 떨어지는 듯해도 엄마들이 기가 막히게 알아냅니다. 보통은 공부 잘하는 아이 엄마들과만 교류하려 하기 때문에, 그런 데서 상처를 많이 입었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그런 게 너무 속상했는데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그냥 포기하고 삽니다.”

C씨는 주변이 모두 아파트 단지고 다들 오래 살다보니 친구가 너무 많은 것도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의지가 강한 아이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의외로 많아진단 설명이었다.

“8단지에 살며 신서중에 다니다 아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며 등촌동으로 이사가고 애는 전학시킨 지인이 있습니다. 애 스트레스가 덜해지니 엄마도 너무 편하다고 하더군요. 저는 시기를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밖에 나가서 잘하는 아이들 군에 속했더라면 아이가 자신감을 갖고 더욱 열심히 할 수도 있었을거라 봐요. 일산, 염창동, 등촌동 등지에 살면서 대학 잘 보낸 친구들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애 교육 때문에 목동에 들어왔는데, 오히려 목동에 살아서 애교육이 망쳐진 건 아닌가 하는 후회감이죠.”